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권태 (이상 수필)

5분 후에 그들은 비키면서 하나씩 둘씩 일어선다. 제각각 대변을 한 무더기씩 누어 보았다. 아, 이것도 역시 그들의 유희였다. 속수무책의 그들 최후의 창작 유희였다. 그러나 그중 한 아이가 영 일어나지를 않는다. 그는 대변이 나오지 않는다. 그럼 그는 이번 유희의 못난 낙오자임에 틀림없다. 분명히 다른 아이들 눈에 조소의 빛이 보인다. 아, 조물주여! 이들을 위하여 풍경과 완구를 주소서.-본문 중에서
5분 후에 그들은 비키면서 하나씩 둘씩 일어선다. 제각각 대변을 한 무더기씩 누어 보았다. 아, 이것도 역시 그들의 유희였다. 속수무책의 그들 최후의 창작 유희였다. 그러나 그중 한 아이가 영 일어나지를 않는다. 그는 대변이 나오지 않는다. 그럼 그는 이번 유희의 못난 낙오자임에 틀림없다. 분명히 다른 아이들 눈에 조소의 빛이 보인다. 아, 조물주여! 이들을 위하여 풍경과 완구를 주소서.-본문 중에서
본명은 김해경(金海卿),(1910년 -1937년) 서울에서 태어났다. 보성고보를 거쳐 경성고공 건축과를 나온 후 총독부의 건축기수로 취직했다. 1931년 처녀작인 시 <이상한 가역반응(可逆反應)>, <파편의 경치>를 <조선과 건축>지에 발표하였고, <건축무한육면각체>를 발표하면서 '이상(李箱)'이라는 필명을 사용했고 그 이후로도 계속 '이상'이라는 이름으로 작품활동을 했다. 1933년 3월 폐병으로 인해 건축기수직을 사임하고 배천온천에서 요양을 했다. 이때부터 그는 폐병으로 인한 절망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문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. 1934년 시 <오감도(烏瞰圖)>를 <조선중앙일보>에 연재했으나 난해하다는 독자들의 항의로 30회 예정이던 것을 15회에서 중단해야 했다. 1936년 <조광(朝光)>지에 소설 <날개>를 발표하였다. 같은 해에 결혼하여 일본 도쿄로 가 <봉별기(逢別記)> 등을 발표하였으나 1937년 사상불온혐의로 체포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났지만 폐병이 악화되어 죽고 말았다. 27세 젊은 나이였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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