바루 이 산 넘어 큰 골에 광산이 잇다. 광부를 삼백여 명이나 부리는 노다지 판인대 매일 소출되는 금이 칠십 냥을 넘는다. 돈으로 치면 칠천 원. 그 줄맥이 큰 산 허리를 뚤고 이 콩밭으로 뻗어 나왓다는 것이다. 둘이서 파면 불과 열흘 안에 줄을 잡을 게고 적어도 하루 서 돈식은 따리라. 우선 삼십원만 해두 얼마냐. 소를 산대두 반 필이 아니냐고. -본문 중에서
김유정 (1908.1.11~1937.3.29)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. 휘문고보(徽文高普)를 거쳐 연희전문(延禧專門) 문과를 중퇴하고, 한때는 일확천금을 꿈꾸며 금광에 몰두하기도 했다. 1935년 소설 《소낙비》가 《조선일보》 신춘문예에, 《노다지》가 《중외일보(中外日報)》에 각각 당선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였다. 이후 각별한 교우로 지내게 된 이상을 만나게 되었다. 폐결핵에 시달리면서 29세의 나이로 요절하기까지 불과 2년 동안 30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길 만큼 문학적 정열은 남달리 왕성했다.
경춘선에 있는 기차역으로 강촌역과 남춘천역 사이에 한국철도 최초로 인물명을 딴 김유정역이 있으며, 인근에 김유정 문학촌이 있다. 역 앞 실레마을이 그의 고향이고, 소설 대부분이 실레마을을 무대로 삼고 있다.